「호암탄생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위원장 김만제)」는 오는 2월 11일(목) 대구에서 출발하여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한 삼성그룹을 창립한 故. 이병철 회장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고, 그 공적을 기리기 위한 기념행사를 대대적으로 펼친다.
주요 행사로는 먼저 아침 7시부터 호텔제이스에서 상공의원, 경제단체 대표와 지역기업 및 삼성측 임직원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포럼」이 개최된다. 이날 포럼에서 연세대학교 장진호 교수가 “한국경제발전과 호암의 기업가 정신”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다.
오후에는 삼성 고위층이 4시경 대구시청을 방문한 후, 김만제 100주년 기업사업 추진위원장을 비롯한 시장, 대구상의 회장 등과 함께 4시 45분경 삼성상회터를 방문하여 삼성상회터 기념공간 조성계획에 대한 설명이 이루어진다. 5시 20분부터 50분까지는 대구오페라하우스 야외무대에서 주요 인사들과 시민 등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동상제막식」이 개최된다. 동상은 청동 입상으로 높이는 230cm이며, 병풍석 좌측에는 1982년 4월 2일 故 이병철 회장이 보스턴대 박사학위 기념강연에서의 주요내용이, 병풍석 우측에는 「호암탄생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의 동상건립 취지문이 실린다.
※ 병풍석 : 좌 전 생애를 통한 나의 기업활동에서 배우고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기업의 존립기반은 국가이며 따라서 기업은 국가와 사회발전에 공헌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지난 40년간 사업보국을 주창해왔다. 나는 인간사회에 있어서 최고의 미덕은 봉사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인간이 경영하는 기업의 사명도 의심할 여지없이 국가 민족 그리고 인류에 대하여 봉사하는 것이어야 한다. 기업경영의 성과를 세금 헌금 배당 등으로 분배하여 국가운영의 기초를 풍부하게하면서 기업자체의 유지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 기업의 사회적 봉사이다.
1982. 4. 2 보스턴대 박사학위 기념강연에서
※ 병풍석 : 우 호암 이병철 선생은 1910년 경남 의령에서 출생하여 일찍이 사업보국의 큰 뜻을 세우고 1938년 대구시 중구 인교동에 삼성상회를 설립하였다. 이것이 오늘날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 삼성의 모태이다. 선생은 사업보국, 인재제일, 합리추구의 철학을 가진 선구자로 모든 경제인의 귀감이다. 산업 전 분야에 걸쳐 탁월한 업적과 부국의 길을 닦은 선생의 뜻을 높이 기리고 그 정신을 이어 가고자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삼성의 발상지인 대구에 시민의 뜻을 모아 선생의 동상을 모신다.
2010년 2월 12일
호암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동상제막식후 6시부터 7시까지는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주요 내빈과 대구시민 등 1,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호암탄생 100주년 기념음악회」가 개최된다. 기념음악회에서는 대구시립교향악단과 대구시립합창단, 그랜드에코 오페라합창단의 공연으로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중 개선행진곡과 요한스트라우스 2세의 봄의소리 왈츠 작품 410, 베토벤 교향곡 제9번 라단조 ‘합창’ 작품 125 중 제4악장 Ⅳ 프레스토 등이 공연된다.
호암탄생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의 사무국인 대구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이번 행사를 계기로 대구가 세계적으로 성장한 기업의 모태라는 자부심과 함께 대구가 기업친화적인 도시이고, 기업하기 좋은 도시가 되어 침체된 지역경제 활성화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 호암탄생 100주년 기념사업 경과
❍ 그간 우리지역에서는 대구에서 출발하여 우리나라 산업발전의 주축이 된 삼성을 창립한 호암 이병철 선생의 탄생 100주년(‘10.2.12)을 기념하고 그 업적을 기리는 기념사업을 추진하자는 각계의 의견이 꾸준히 대두.
❍ 그간 ’09. 7. 10일 대구 상공회의소에서 김만제 전 부총리를 위원장으로 이인중 대구상공회의소회장, 노희찬 前대구상공회의소회장, 노동일 경북대총장, 신일희 계명대총장 등 16인의 위원으로 구성된 「호암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가 발족
❍ 이날 추진위원회 회의에서는 사업보국과 인재경영 등 호암의 경영철학과 기업가정신을 기리는 기념비적 사업을 추진하자는데 의견을 같이 하고 호암 동상 건립 등 주요사업 추진 방안을 마련
❍ 동년 7월16일, 추진위원회는 2차 회의를 열고 구체적인 사업계획 수립과 함께 동상건립 후보지와 삼성상회터, 舊 제일모직 본관 및 기숙사 등을 현장 시찰했으며
❍ 동년 8월3일에는 김만제 추진위원장, 이인중 대구상의회장, 남동균 대구시 정무부시장이 삼성을 방문하여 기념사업 추진계획서를 전달
❍ 동년 10월 9일, 추진위원회는 3차 회의를 열고 다음의 5가지 기념사업을 확정·추진키로 의결. - 먼저, 동상은 오페라하우스 관내 야외조각상 부지인 바로 이 자리에 건립키로 하고, 조각가는 호암재단과 협의하여 대구출신 김규룡 작가로 선정하였고 - 오페라하우스앞 도로 제일모직로(600m)를「호암로」로 개칭하기로 하였음. - 또한, 삼성상회 터 기념공간은 지역 기업인의 인근토지 무상제공으로 확충·조성하고 디자인은 제일기획에서 수행키로 하고 - 기념포럼은 대구상공회의소와 삼성경제연구소가 공동으로 개최키로 하였음. - 마지막으로 기념음악회는 여기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대구시립교향악단과 대구시립합창단, 그리고 그랜드에코 합창단의 공연과 함께 개최키로 하였음.
❍ 그리하여 오늘 삼성 고위층과 우리 지역 주요인사 그리고 시민이 함께한 가운데 뜻 깊은 호암 이병철 선생의 동상 제막을 비롯한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를 갖게 되었음.
◈ 湖巖 李秉喆 先生 略傳
湖巖 이병철 선생은 1910년 2월 12일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의 산수 좋은 중교리에서 부친 述山 이찬우공과 모친 안동 권씨 사이에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일찍이 조부의 가르침으로 한학에 눈을 떴고, 아홉 살 소년시절에 3·1운동의 함성을 들으며 진주 지수보통학교에 들어가 바깥세상에 첫발을 디뎠으며, 이듬해 서울로 옮겨 수송보통학교와 중동중학교를 다녔고 1926년 순천 박씨 명문 박팽년공 후손인 박두을 여사와 결혼했다.
신학문에 대한 열망을 품고 동경에 유학하여 와세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다가 세계적인 대공황의 소용돌이 속에서 느끼고 생각하는 바가 많아 중도에 그만두고 귀국한 湖巖은 1938년 3월 1일, 28세에 대구시 중구 인교동에 삼성상회를 설립하고 북경, 상해 등 대륙을 상대로 무역업을 시작했다.
경영에 비범한 능력을 발휘하셨던 湖巖은 1953년 부산에서 제일제당을, 1954년 대구에서 제일모직을 세웠습니다. 이들은 최고의 생산시설을 갖추고 새로운 경영기법을 시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인 기업이었다.
평소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사명에 관해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었던 湖巖은 1961년 한국의 대표적인 경영인들이 모두 참여하는 한국경제인협회를 발의하였고 초대회장으로 추대되었다.
우리나라는 이때 비로소 경제부흥의 기운을 찾게 되었고 중요한 경제정책들이 수립되어 5천년 민족사의 숙원인 빈곤추방의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1967년 세계최대의 단일비료생산시설인 한국비료공장을 세웠으며, 중앙매스컴과 호암미술관, 삼성미술문화재단도 세워 언론· 예술· 문화 창달에 정성을 쏟았다.
특히 1969년 설립된 삼성전자는 오늘날 세계기업으로 도약해 그 제품은 지구 구석구석 미치지 않은 곳이 없으며, 1985년 삼성반도체는 256KD램에 이어 1메가 D램을 개발 양산해, 우리나라는 일약 세계 3위의 반도체생산국이 되었고 첨단기술국의 가능성을 온 세계에 과시하였다.
湖巖의 탁월한 경영능력과 미래를 통찰하는 선견력과 강인한 지도력은 후세들에게 미래의 꿈과 무한번영의 교훈을 줄 수 있게 되었다.
평생 자신보다 현명한 인재들을 찾아 육성하고, 부국의 길을 닦은 湖巖은 1987년 11월 19일 78세를 일기로 타계하였으며,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일본정부는 훈일등서보훈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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